아, 안써져. Croiser.

그라세츠라고는 0.000000000001%도 없는 지극히 사심 가득한 조각글.
사지/레이/이안/린다/티에리아 만 등장함.
어쩌면 개그.
어쩌면 부자물?
ㅎ...





 

그 순간, 톨레미는 문제 아닌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몇 차례나 이어진 어로우즈의 끈질긴 추격전에도 다소나마 익숙해 졌지만, 그 때마다 건담과 톨레미는 크고 작은 데미지를 입어 왔다. 더 이상은 하로에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자동 수복 매뉴얼에 의지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데미지도 있었고, 늘 그랬듯 톨레미는 만년 인력 부족 상황. 이안과 밀레이나가 열심히 힘써 수리하고 있었지만 그 둘 만으로는 금방 한계가 찾아왔다. 아뉴 리터너도 종종 건담의 수리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당연한 이유로 함에서 따돌려지고 있는 그녀에게 있어, 부녀간의 허물없는 분위기는 무엇보다 참기 힘든 분위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결론은, 건담의 수리를 위한 일손이 부족했다. 저를 참가 시킬 수도 없어 끙, 끙 신음만 흘리고 있는 이안의 양에 사지가 미안한 듯 웃었다.

이걸 어쩌나.”
이안의 신음소리 같은 중얼거림에 사지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우주 기사 2종 면허가 있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부려 먹히고 있기야 했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식객인 외부인. 이안도 셀레스티얼 빙의 멤버는 멤버인지라 톨레미 함 내라면 몰라도, 건담에 관해서는 간단한 정비 이외의 것은 일절 보여주지 않았다.

이안의 잔뜩 곤란해 하는 모습에 우물쭈물 거리던 사지가 아! 하고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 저기 그럼, 저 대신 린다 아주머니께서 참가하시면 ……?”

사지의 조심스러운 말에 이안의 눈썹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쓱, 치켜 올라갔다.

린다는 레이를 돌봐야 하잖아?”

, 그건 그런데.”

사지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함 내에서 육아 경험이 있는 것은 린다 한 명 뿐이라는 이유로 요 근래 그녀의 주된 최우선 임무는 레이의 육아가 된 상태였다. 지긋지긋할 만큼 전투가 자주 있는 상태에서 세츠나가 쉴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달리 아이를 돌보아 본 적 없는 사람들만 모인지라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유일하게 여동생이 있어 봤다는 록온이 조금이나마 레이의 육아에 일조할 뿐이었다.

티에리아가 내보내 주지 않을 텐데? 게다가 레이 혼자 놔 둘 순 없는 노릇이잖아.”

~. 요는, 레이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사지의, 어딘가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사지가 이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비밀 이야긴가, 싶어 이안도 제 손을 귓가에 가져가 오므렸다.

, 이래봬도 애들 잘 돌봐요. 갓난아기도 꽤 볼 줄 알고. 봉사활동을 주로 고아원에서 했거든요.”

……그래서, 그게 뭐?”

이안의 반응에 사지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양 떨떠름히 웃었다. 세츠나나 다른 톨레미 크루들이야 아무런 허물없이 자신을 대해준다지만, 마이스터의 부 리더격이자 레이의 보호자인 티에리아는 달랐다. 그가 자신을 철저히 배제하는 덕에 레이를 돌볼 사람을 정할 때에도, 아무도 자신에 대해서는 재고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그러니까, 저도 레이 돌볼 줄 알아요. 제가 레이를 돌보고, 린다 아주머니께서 건담의 수리를 하시면 되잖아요?”

! 이안이 입을 쩍 벌렸다. 차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티에리아가 레이에 관여해서는 거의 철저할 정도로 사지를 배척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였다. 세츠나의 반응이나, 그동안 이야기를 해 온 것을 분석해 보면 사지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아이를 돌볼 줄 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일반인.

부탁해도 되냐?”

. 근데…… 저기…….”

사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중얼중얼, 흡사 개미 목소리 같은 작은 목소리.

, 티에리아 씨가, 반대…… , 거 같은 데요…….”

그리고 두 남자는 동시에 어깨를 늘어트렸다.

먹이를 노려보는 맹수 같은 시선 앞에서 사지는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이안이 저만 믿으라며 호언장담을 하기에 따라오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미덥지 않았다. . 간단히 손을 올려 안경을 밀어 올리는 티에리아의 모습은 그대로 사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이안. 지금 무어라 하신 겁니까.”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도 이안은 당당했다.

그러니까, 린다 대신, 사지 군이 레이를 돌보게 해 달라고.”

이안의 말에 티에리아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양 고갤 돌려 외면했다. 함 내에 이미 밀레이나의 어머니이자 육아 경험이 있는 린다가 있는데 무엇 하러 저 자식에게 레이를 맡긴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들을 증오하고, 세츠나에게 총구까지 들이댄 자식을.

사지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티에리아의 양에 이안이 절절한 한숨을 내 쉬었다.

고아원에서 봉사활동도 꽤 많이 했다니 린다 만큼은 아니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은 될 거다. ? 티에리아. 그렇다고 사지 군에게 이 이상 건담에 대해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이안이 마치 타이르듯 말했다. 티에리아의 시선이 흠칫 떨렸다. 확실히 이안의 말 대로였다. 간단한 정비라면 가볍게 눈을 감아 모른 척 할 수 있었지만, 요 근래 건담의 상황을 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극히 공학자다운 면모가 강하긴 해도, 이안은 자신들보다 훨씬 오래 셀레스티얼 빙에 있던 남자였다.

빠드득. 티에리아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으려 애썼다.

……당신의 부탁이니까, 들어주는 겁니다.”

이안의 부탁에 마지못해 사지가 레이를 돌보는 것을 허락해 놓고도 티에리아는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아니, 마음이 풀릴 리 없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들이댄, 린다가 정하는 기준치를 클리어 해야 한다는 조건에도 사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레이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얌전한 아이였다. 세츠나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했던 티에리아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제 어머니의 품에서만 안정을 되찾고 그 품에서만 잠들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세츠나가 곁으로 다가가기만 하면 어머니의 품에 있고 싶어 칭얼거리다가, 결국엔 울음을 터트렸지만.

린다 바스티.”

잔뜩 굳어진 채 이안과, 사지를 데리고 들어오는 티에리아의 모습에 레이에게 유아식을 먹이고 있던 린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신이 레이를 돌보게 된 지도 꽤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유독 사지만큼은 이 방에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티에리아가 매의 눈으로 그가 이 방 근처에 얼씬 거리는 것을 감시하고 있는 탓이겠지만.

그런데 그런 사지가, 티에리아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무슨 일이예요, 티에리아?”

……건담의, 수리가 시급하다. 그가 갓난아기를 어느 정도 돌볼 줄 안다는데, 당신이 테스트를 해 보겠나?”

테스트라니.”

린다가 눈을 둥글게 뜨고 아연히 중얼거렸다.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사지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청년임을 확실하게 느꼈기에 테스트를 해 보라는 티에리아의 말이 더욱이나 어색하게만 들렸다. 그러나 곧 린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에리아는 현재 톨레미에서 누구보다 세츠나와, 그 아들 레이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레이는 티에리아의 대자代子. 외부인인 사지에게 맡기기에는 못내 불안하기만 할 테지.

알았어요. 사지 군, 괜찮겠어요?”

, .”

사지는 잔뜩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린다가 가장 처음 사지에게 시킨 것은 레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이었다. 괜찮겠냐며 몇 번이고 물어오는 린다의 모습에 사지가 쓰게 웃으며 몸이 기억하는 대로 레이의 기저귀를 갈았다. 낯선 손길에 레이가 칭얼거릴 틈도 없이, 사지는 레이의 발바닥을 간지럽혀 주의를 돌리거나 하는 식으로, 순식간에 레이의 기저귀를 갈아냈다.

심지어는 자신보다 훨씬 능숙한 것 같은 그 모습에 린다가 입을 벌렸다. 발바닥이나 옆구리 따위를 작게 간지럽혀 주의를 돌리는 것은 그녀로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방법이었다. 호오! 린다가 몇 번이고 밀레이나의 기저귀를 가는 데 애쓰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이안이 나직한 감탄을 터트렸다. 두 사람이 감탄하는 연유를 알기에 티에리아는 쯧. 하고 작게 혀를 찼다. 차라리 바쁘니까, 어쩔 수 없이 결정된 상황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능숙하면 앞으로도 몇 번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저어어때요?”

……. ……굉장해요, 사지 군. 혹시 동생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얼굴에 한가득한 감탄을 띄우며 물어오는 린다의 양에 사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 눈가에 촉촉한 물기가 젖어 들었다. 낯선 곳에서, 그것도 증오하는 셀레스티얼 빙에서 그리도 담담하게 생활해 오던 청년의, 뜻밖의 모습에 린다가 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지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누나가, 저를 낳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제 기저귀며 뭐며 다 챙겨줬거든요. 누나한테 미안해서라도 고아원에서 자주 봉사활동을 했었어요.”

. 무거운 신음소리가 흘렀다. 내심 사지를 제 아들마냥 생각하고 있던 이안의 눈빛에 아련함이 깃들었다. 이내 그가 툭툭, 사지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사지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하핫, 하고 쓴 웃음을 터트렸다. 작은 눈물방울이 사지의 뺨을 흘렀지만, 사지는 못내 행복해 보였다.

공학자 간의 연대, 그것도 심지어는 부자지간처럼 보이는 그 화목한 연대를 깨트린 것은 티에리아였다. 잔뜩 못마땅한 목소리가 그 훈훈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전과 비하면 사지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이지만 누그러져 있었다.

기저귀 하나 간 것으로 테스트가 끝난 건 아닐 텐데.”

, . 그렇지. 린다 아주머니. 다음번엔 뭘 해보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