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의 레이 육아일기? 개그? Croiser.

아, 안써져에 이어서.
사지/레이/마이스터즈/미약한 사지루이.
이거 그라세츠일텐데...ㅡㅡ;;


“기저귀 하나 간 것으로 테스트가 끝난 건 아닐 텐데.”
“아, 참. 그렇지. 린다 아주머니. 다음번엔 뭘 해보면 될까요?”
사지의 물음에 린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저기… 그럼, 레이를, 좀 안아 보겠어요? 레이가 사람 품을 좀 가려서…….”
린다의 말에 사지가 얼른 레이를 품안에 안아 보였다. 린다가 이리 저리 코치를 해 주고 나서야 겨우 자세가 나오던 아이 어머니와 달리, 사지는 지나칠 정도로 익숙해 보였다. 린다의 품도 겨우나 익숙해 진 아이가 낯선 품에 안긴 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선 우, 우…. 하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양에 린다의 얼굴에 안타까운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사지는 당황하는 일 없이 레이를 고쳐 안고 얼굴을 마주보았다.
“레이야.”
침착하게 부르는 목소리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아마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사촌지간이라도 되어서 저리도 친근하게 부르려나, 하고 고민할 정도로 사지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또 상냥했다. 저를 부르는 상냥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레이는 칭얼거리던 것도 잊은 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사지를 바라보았다.
“우리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지?”
사지는 시시각각 표정을 바꿨다. 제법 익살맞은 표정에 레이가 낯선 품에 안겼다는 것은 완벽하게 잊은 것 같았다. 사지의 표정이 신기한지 레이가 손을 허우적거렸다. 우, 우- 아부우-─ 사지가 킥킥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엄마랑 있고 싶을 텐데 이렇게 시꺼먼 아저씨가 와서 미안해. 용서해 줘. 응?”
스스로를 아저씨라고 칭한 사지가 슬쩍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췄다. 저를 바라보는 이안의 표정이 못내 불만스러워 보였다. 아니, 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네, 이안 아저씨? 사지는 애절하기까지 한 눈빛으로 이안에게 해명했다. 어쨌거나, 사지가 조용조용 애정 가득한 말로 타이르고, 표정을 여러 번 바꿔가며 레이를 달랜 결과는 꽤 효과적이었다. 린다의 품도 겨우나 익숙해 진 아이가 사지에게 안긴 채, 희미하지만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하.”
티에리아는 어이없고, 기가차고, 억울해서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지금껏 레이가 세츠나 이외의 사람에게 저렇게 빠르게 친숙해 진 적이 있던가. 심지어는 대부인 자신도 레이를 품에 안았을 때 아이가 칭얼거리지 않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린다도 요 며칠 전에야 레이의 칭얼거림을 듣지 않게 되었는데.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나.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절절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심지어 사지는 레이를 마치 제 아이인 양 품에 안고서 응, 응. 하고 일찍이 세츠나 이외의 사람에겐 보여준 적 없는 레이의 애교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아… 난…, 나는… 내가……!
티에리아의 눈에서 질투의 불꽃이 화륵, 피어올랐다. 그러나 티에리아는 섣불리 사지의 품에서 레이를 빼앗지 못했다. 심정 같아서는 당장에 제 품으로 빼앗아 들고 싶었지만 막상 레이의 드문 애교를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뭐, 아주 잠깐, 놔 둬 볼까. 아이가 저리도 즐거워하는데. 그러나 언뜻 비참함까지 담고 있는 억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레이를 돌보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를 너무나도 쉬이 클리어 한 사지의 양에 린다가 티에리아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제 의견을 피력했다. 그녀도 레이를 돌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마냥 레이만 돌보며 방 안에 갇혀있는 것 보다는 건담의 정비를 돕거나 하는 편이 훨씬 더 즐거웠다.
“저기, 티에리아. 앞으로는 웬만하면 그냥 사지 군에게 레이를 돌보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 린다 바스티?”
“저기, 난… 아무래도 밀레이나 한 명만 키워봐서 그런지, 레이를 돌보는 게 영 어색하기만 하거든요.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는 사지 군이 나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린다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티에리아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함 내에서 유일하게 아이를 제대로 키워 본 경험이 있는 린다의 의견은 무엇보다 중요한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사지를 지지하고 나선 이상, 사지가 레이를 돌보는 걸 반대할 수 있는 구실은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당최 뭐가 아쉬워 사지의 손에 레이를 맡겨야 한단 말인가. 저 사랑스러운 레이를 외부인의 손에 맡길 생각을 하려니 억울함이니 비참함이니, 하는 감정을 넘어 살의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티에리아의 살기에 사지가 흠칫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아기 치고도 상당히 예민한 레이가 우, 우으- 하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칭얼거림에 티에리아가 입술을 꽉 물어 살의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살의는, 그 빌어먹을 남자, 그라함 에이커에게 풀어내기로.
눈에 보이기만 해 봐라. 결코 살려 두지 않겠다.

***

티에리아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방을 나서자마자 이안과 린다가 사지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부부의 눈에도 사지가 레이를 돌보는 양은 너무도 완벽했다.
“이야, 사지 군, 나중에 결혼 하면 사랑 받겠는데?”
“정말요. 아이 정말 좋아하나 봐요, 사지 군.”
그저 몸에 익은 대로만 했을 뿐인데 좌우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사지가 볼을 붉게 물들였다. 딱히 자신이 아이를 잘 돌본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 더더욱 그랬다. 사지는 이안과 린다의 칭찬에 쑥스러워 하면서도 레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팔을 흔들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면서 레이의 상태를 살폈다. 새삼스레 봉사활동 장소로 고아원을 고집했던 제 과거가 너무너무 고마웠고, 또 뿌듯했다.
드르륵. 방의 문이 열리고 스산하기 그지없는 티에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 바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아. 참. 그랬지. 그럼 사지 군, 난 간다. 레이 잘 부탁 하마.”
“부탁할게요, 사지 군.”
“아, 네! 이안 아저씨, 린다 아주머니.”
사지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지는 세 사람을 배웅했다.
레이와 단 둘이 남은 사지는 꺄우우, 거리며 저를 바라보는 레이의 모습에 헤죽, 웃었다. 와아, 정말 사랑스러워….
“앞으로 잘 부탁해, 레이야.”
“우- 아, 아우-”
레이가 아직 재생 캡슐 속에서 생활할 때에, 사지는 이것저것 없는 상처도 만들어 내 그 상처를 핑계 대어 메디컬 룸에 출입하곤 했다. 물론 상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레이를 보고 싶었을 뿐. 핑계임을 알아도 상처는 실제였기에 티에리아는 언짢은 기색은 내어도 출입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못했었다. 차라리 그때가 레이를 보기가 더 편했는데.
그러나 정작 재생 캡슐에서 나오니 티에리아의 감시가 너무도 삼엄해 레이를 좀체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자라 있었다.
“아니, 그치만… 마음은 알겠는데 말이지…….”
사지는 말똥말똥 저를 올려다보는 레이에게 씩 웃어주며 중얼거렸다. 첫 대면에서 보인 모습이 세츠나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이었으니 그 엄청난 과보호를 자랑하는(다른 두 명의 마이스터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티에리아가 자신을 좋게 볼 리 없었다. 물론 그는 그런 티에리아의 양에 대해 머리로는,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냐? 하고 불쑥 치밀어 오르는 생각에 사지가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사지는 양껏 팔 돋움 해 무언가를 움켜쥐려 하는 것 같은 레이에게 제 새끼손가락을 내어 주었다. 아이가 그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흔드는 대로 휩쓸려 주며, 사지는 연인을 떠올렸다. 빛깔이나 톤도 조금 달랐고, 곱슬과 생머리의 차이는 있었지만 루이스 역시 탐스러운 금발을 자랑하는 소녀였다.
루이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아파하지는 않을까. 힘들어 하지는 않을까. 나는… 나에 대해서는, 생각해 주고 있을까.
“으, 우…….”
사지의 관심이 제게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간 것을 깨달았는지 레이가 칭얼거림을 뱉어 냈다. 그 칭얼거림에 사지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한눈에도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이 마치 찹쌀떡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지는 다시 레이에게 집중했다.
사지가 작정하고 레이의 육아에 전념하자, 톨레미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한 외부인에 지나지 않은 사지를 대신해, 건담의 개발을 담당했던 린다가 톨레미와 건담의 수리에 참가한 덕분이었다. 마치 겨우 톱니바퀴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것 같은 모습에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는 생각이 톨레미 크루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미련하게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어, 레이는 어때?”
부지불식간에 문이 열리고 이제는 친근하게 까지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지가 막 잠이 든 레이를 안은 채 뒤돌아보았다. 막 어로우즈를 따돌리고 돌아와 손에 헬멧을 끼고, 파일럿 슈트를 입은 채인 라일의 모습에 사지가 애매모호하게 웃었다. 늘 이런 순간에 레이가 톨레미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임을 깨닫게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레이를 보기 위해 들리는 톨레미의 사람들의 모습은 사지에게 매번 그것을 실감케 했다.
레이가 사지의 품에 안긴 채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본 라일이 안타까움에 어깨를 늘어트렸다.
“으으, 내가 늦었네? 일부러 빨리 돌아온 건데.”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됬을 텐데.”
그러나 분명 라일은 무리를 해서까지 다른 마이스터 보다 일찍 귀함한 것이리라. 그 증거로, 나갔다 오면 항상 레이부터 보고 가는 다른 세 사람은 아직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킥킥 웃음을 터트리는 사지의 양에 라일이 복잡한 표정을 떠올렸다. 어로우즈와의 추격전 끝에 겨우 귀함한 참인 것을 알면서도 저런 이야기를 태연히 꺼내놓는 사지를 보아하니 기분이 뭐했다. 좀 더 소심한 면모가 있던 것 같았는데, 그게 요 몇 달 사이에 많이 변해 있었다.
라일이 어쩔 수 없지. 하고 어깨를 으쓱이는 사이에 다시 문이 열리며 세츠나와 티에리아, 알렐루야가 들어왔다. 지금은 소마 필리스의 인격인 마리 파파시도 전투가 끝 난 직후 가끔은 들리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오지 않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의 눈에 하나같이 지친 안색이 깃들어 있었지만, 이내 레이를 보는 순간 그 지친 기색은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아, 역시 톨레미의 보물.
“사지. ……레이는?”
헬멧도 벗지 않은 채 그것을 물어오는 세츠나의 양에 사지가 저도 모르게 라일을 바라보았다. 라일이 삐그덕하게 시선을 돌렸다.
“사지.”
애가 탄 모습으로 재촉하는 세츠나의 모습에 사지가 어깨를 으쓱이며 제 품에서 잠든 레이를 덥석 세츠나의 팔에 안겨 주고서 말했다.
“이유식 먹고, 배부르고 등 따셔서 자는 중이야.”
그렇게 세츠나에게 레이를 안겨준 사지가 흘끔 티에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네 사람 사이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티에리아는 그 자신의 헬멧을 벗어 방 한 곳에 놓아두고서는 세츠나의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헬멧을 벗겨 주었다. 그동안에도 그녀의 눈동자는 레이에게 고정된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준 티에리아가 홱 고개를 돌려 라일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은 흉흉하니 살벌했다.
“라일 디란디.”
서슬 퍼런 목소리에 라일의 목이 자라마냥 움츠러들었다. 스스로도 어이없는 짓인 것을 알고 있으니 변명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트란잠은 전투에 쓰라고 있는 거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정론.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알렐루야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뀐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사지 역시 알렐루야와 별반 다르지 않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라일은 제 처지도 잊은 채 알렐루야를 향해 측은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티에리아가 꺼낸 정론은, 늘 그렇듯 유능하지만 파격성이 강한 톨레미의 전술예보사의 덕분에 유독 알렐루야만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중 하나였다. 당연히 그런 걸 신경 쓸 티에리아가 아니었기에 그는 한없이 라일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고, 품에 레이를 안은 세츠나만이 방안을 떠도는 측은지심에 동조지 못했다.
“……앞으로 또 그딴 식으로 트란잠을 썼단 봐라.”
그러나 티에리아 역시 그 이상의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한 시라도 빨리 레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 귀함하는 데 트란잠을 쓴 라일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 장면을 방관하듯 지켜보던 사지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팔불출들….”
사지의 말을 들은 티에리아와 라일, 알렐루야의 표정이 일시에 바뀌었다. 그러나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에 반박조차 할 수 없었고, 곧 그들은 그게 뭐 어떻다고. 하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세츠나의 곁으로 모여 들었다.